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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포도주의 역사와 필록세라의 재앙

알꼴요정 2023. 4. 16.

인류가 스스로 포도주를 담가 마시기 시작한 시기는 약 6~7천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약 2세기경부터 와인이 제조되기 시작하였고, 1152년 보르도 지역을 포함한 거대한 아키텐 공작령의 여공 엘레오노르와 영국 왕위계승권자의 결혼을 계기로 보르도 와인은 영국에 수출되기 시작하였고, 보르도지방의 소유권은 결혼지참금의 성격으로 영국 왕실에 넘어가게 된다. 여담이지만 엘레아노르의 첫 번째 결혼상대는 프랑스국왕 루이 7세라서 후에 백년전쟁의 원인이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어쨌든 영국 왕위계승권자와의 결혼을 계기로 보르도 지방은 영국인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체계적 생산과 항구발달이 가능했으며, 후에 17세기와 18세기를 거쳐 훗날 세계적인 와인산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필록세라의 재앙

프랑스뿐만 아니라 유럽의 와인산업을 초토화시킨 필록세라는 1840년대 미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국 토착품종은 필록세라에 면역을 갖고 있어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유럽의 비니페라는 면역이 없었다는 것. 아 망했어요 결국 와인 제조업자들은 원인도 모른 채 탈탈 털렸다. 결국 1854년은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최악의 흉작이었는데,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이후에도 흉작은 계속되어 와인산업은 완전히 회생 불가능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1868년에야 원인이 필록세라 때문이라는 것을 규명했지만 당시 유럽은 필록세라가 뭔지 몰랐고 전혀 새로운 해충이었기에 대책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 결과, 1860년대에 60억리터였던 프랑스의 와인 생산량은 1880년대, 20억 리터로 급감했다. 20년 동안 와인산업이 크게 정체되는 동안에 위스키산업이 크게 발전하기도 하였다. 또한 프랑스를 벗어나 신세계(남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르헨티나, 칠레 등)로 와인산지를 전환하는 노력이 시작되었던 시점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당시 프랑스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신나게 털리고(혹은 털리는 중)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패전한 국가 정부가 아무리 국가의 자존심이라지만 와인산업에 신경을 쓸 수 있을 리가... 그런데, 1881년 필록세라에 면역이 있던 미국 토착품종의 뿌리를 비니페라에 접목시키면 어떨까? 하는 방안이 등장했다. 다행히 이 방식은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와인업계는 필록세라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칠레는 필록세라가 기승을 부리기 전인 1851년에 비니페라를 수입했기 때문에,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접붙이기 방식을 하지 않은 순수 비니페라 품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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