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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 와인의 역사 알아보자

알꼴요정 2023. 4. 22.
와인을 진지하게 음미하고 싶다면 클라레(claret)를 마셔야 한다.
영국 작가 새뮤얼 존슨


보르도(Bordeaux) 지방은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고급와인 생산지다. '보르도'라는 이름은 'Au bord de l'eau'(물 근처)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멕시코 난류의 영향으로 따뜻하고 온화한 해양성 기후를 갖추고 있다. 이곳의 와인은 가론강과 도르도뉴강이 합류하여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지롱드강 지역에서 대부분 출하된다. 포도 재배 면적이 총 11만 3천 ha로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와인을 출하한다.

보르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면적 49.36 km2의 작은 도시이지만, 와인 생산지로의 보르도는 서울시 면적(605.33 km2)의 약 2배 정도의 넓은 지역이다.

보르도의 와인 생산 비율은 레드와인 85%, 화이트 와인 13%, 스위트 와인 2%이다.

보르도에는 와인 산지로 인가 받은 '지역'이 20개나 있고, 재배되는 포도의 품종도 지역에 따라 다르다. 당연히 와인의 맛도 달라진다.

지롱드강을 기준으로 강의 왼편(좌안)과 오른편(우안)을 구분하기도 하며, 이 지역에 저마다의 특성을 가진 포도원들이 분포되어 와인이 출하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강의 왼편은 메독(Medoc), 그라브(Graves)로 구분되며, 강의 오른편(우안)은 포므롤(Pomerol), 생떼밀리옹(Saint-Emilion), 프롱삭(Fronsac)으로 구분된다. 각 산지 안에 수많은 영역별 구분과 그 안의 샤토(Chateau)들이 경쟁하고 있다.


역사


보르도 와인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의 와인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발전했는데, 특히 로마인들은 열렬한 와인 애호가들이었다. 그들의 엄청난 와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지금의 이탈리아 반도는 물론 프랑스 전역에까지 포도밭이 확장되었다. 보르도는 1세기 무렵 로마로부터 포도 재배를 전수받았다고 전해진다. 4세기 집정관을 지낸 보르도 출신의 아우소니우스(Ausonius, 310~395, 프랑스식 표기는 Ausone)가 기록한 것처럼, 생산된 와인은 대부분 같은 지역에서 소비되었다.

대서양과 맞닿아있는 보르도는 지롱드 강을 비롯해 크고 작은 강들이 있어 오래 전부터 와인뿐만 아니라 각종 상품의 무역 요충지였다. 보르도가 와인 무역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은 13세기부터다. 이 시기는 보르도가 영국령에 속했던 시기다.

보르도 와인이 유럽에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상징적으로 1152년 5월 18일로 거슬러간다. 프랑스 서부를 차지하고 있던 아키텐 공국의 상속녀 엘레오노르는 프랑스 왕 루이 7세와 이혼하고 노르망디 공작이자 앙주의 백작인 앙리와 재혼했다. 2년 뒤 앙리가 영국의 국왕 헨리 2세로 등극하면서 당시 가론느 강을 중심으로 한 서남부 아키텐 지역의 엘레아노르(Eleanor of quitaine) 지역이 영국령에 속하게 된다. 그 후 아키텐에 속한 보르도는 영국이 프랑스와 벌인 전쟁에서 군수물자를 조달하고, 또 스페인의 침략에 맞서 싸우면서 영국 왕실의 신임을 얻었다. 영국 왕실은 보르도 와인에 대한 세금을 낮춰주고 보르도 와인을 특혜 하였다.

이때부터 보르도 와인의 독주가 시작됐다. 보르도 와인은 13세기가 끝날 때까지 영국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영국 왕실에서 구입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보르도 와인은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보르도 인근 지방에 포도밭들이 빼곡하게 들어서게 된 것도 이후의 일이다. 포도밭은 지롱드 강과 그 지류들로 넓게 퍼져나갔고, 곧 유럽의 주요 와인 생산지로 자리를 잡았다. 이때부터 그곳에서 생산된 모든 와인이 영국으로 수출되었는데 영국인들은 이 포도주를 클라렛(claret)이라고 불렀다. 다른 지역에서 나는 포도주는 약간 노란색이 섞인 붉은빛이었는데 비해, 보르도의 포도주는 짙은 적색을 띠었기 때문이다. 라틴어의 클라라툼(claratum)에서 유래한 클라렛은 '밝은(clear)'을 뜻한다.

보르도 성공의 단적인 예는 수출량에서 알 수 있다. 1305년부터 1308년까지 보르도 항에서 내보낸 와인 양은 무려 9만 8,000배럴이나 된다. 그 후 보르도가 프랑스에 귀속되면서 영국으로의 수출은 잠시 주춤했지만, 이미 보르도 와인은 다른 지역과는 차별화된 고급 와인으로 인식된 후였다. 근현대에 들어서 보르도 와인은 필록세라와 1, 2차 세계대전이란 악재를 만나기도 했지만 이미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위시 리스트에 단단히 자리매김하며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1855년 파리 엑스포 이후부터 보르도는 지명만이 아니라 와인색을 나타내는 것으로 클라렛을 대체하여 쓰고 있다. 오늘날 짙은 붉은색을 나타내는 용어로는 클라렛보다는 보르도가 일반적이 되었고 보르도는 색을 나타내는 용어로도 널리 쓰인다. 국내 모 기업의 보르도 냉장고 광고를 보면 수긍이 갈 것이다.

여담으로 최초의 '농약'의 발명도 보르도 지방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보르도액'이라는 이름이 붙은 초기 농약은 오늘날처럼 벌레를 막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몰래 포도밭에 들어와 포도를 훔쳐먹는 도둑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주민들이 석회수에 유산동(황산구리)을 섞어서 포도에 발라 도둑을 방지했던 것이 시초로, 1885년에 이 '보르도액'이 병충해를 막는 효과도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방범용으로써의 역할 대신 병충해 방지용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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