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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양조의 충격적인 비밀, 여고생 사건과 숨겨진 이야기

알꼴요정 2024. 6. 18.

명절 차례상에서 자주 보이는 백화수복, 이 술의 역사는 무려 80년이 넘습니다. 백화수복은 1945년 광복 직후 설립된 백화양조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 명절 술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백화양조는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오늘은 백화양조와 백화수복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백화양조의 비극적인 사건

1978년 4월 8일, 백화양조에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백화양조 양조장에서 여고생의 시신이 발견된 것입니다. 경찰 수사 결과, 백화양조 계열사 사장 아들 강모군이 여고생 김모양과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강모군은 김양과 실험실에 들어가 김양의 남자 관계를 추궁했고, 김양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옷을 벗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경련을 일으켜 실신한 김양을 강군은 술통에 밀어 넣어 익사하게 했습니다. 강군은 결국 살인 및 시체 유기 혐의로 구속되었지만, 징역 3년이라는 가벼운 형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백화양조의 강력한 재력과 권력이 형량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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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양조의 쇠락

이 사건 이후, 백화양조의 이미지는 크게 타격을 입었습니다. 더불어 백화양조는 소주를 만드는 원료인 ‘주정’의 주정배정권을 매각하면서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까지 막걸리가 국민 술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소주는 작은 시장에 불과했기 때문에 백화양조는 소주를 포기하고 위스키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9년 제2차 오일쇼크 이후 희석식 소주의 점유율이 상승하면서 백화양조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1985년 12월 두산에 인수되며 백화양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백화양조의 설립과 성장

백화양조의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15년 일본인 니시하라가 충남 논산에 조선주조를 설립하고 청주 ‘조화’를 출시했습니다. 광복 이후 조선주조는 미군정에 귀속되었고, 이후 강정준씨가 조선주조를 인수하여 조선양조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1952년에는 회사 이름을 대한양조로 변경하고, 1953년에는 청주 ‘조화’를 ‘백화’로 변경하며 성장해 나갔습니다. 1960년대에는 쌀로 만드는 합성청주가 등장하면서 대한양조는 ‘수복표 백화’를 출시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1967년 회사 이름을 백화양조로 변경하며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청주와 정종의 차이

백화수복 같은 차례주 이야기가 나오면 청주와 정종의 차이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청주는 우리 선조들이 빚던 전통 술로, 쌀과 누룩을 사용해 만듭니다. 일본식 청주는 쌀에 황국균을 뿌려 만드는데, 이 방식은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기 쉽지만 다양한 맛을 내기 어렵습니다. 일제강점기 주세법 시행으로 조선의 청주는 약주로, 일본의 청주는 청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법적으로 누룩을 1% 이상 사용하면 약주, 1% 미만 사용하면 청주로 분류됩니다.

맺음말

오늘은 백화양조와 백화수복의 역사, 그리고 청주, 정종, 사케 등의 용어를 정리해보았습니다. 다음 명절에 차례상을 준비하면서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술 한잔을 기울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3줄 요약

  1. 백화양조는 1945년 설립된 명절 술 제조업체로, 여고생 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2. 백화양조는 주정배정권 매각과 위스키 집중으로 쇠락해 1985년 두산에 인수되었다.
  3. 청주와 정종은 한국과 일본의 술 제조 방식 차이로 나뉘며, 전통 누룩 방식의 술은 약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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